[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그리스도 신비의 중심으로 들어가자”


교황의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 예수님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 중심에는 “나를 사랑하셨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그분이 계신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0월 24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에서 이같이 말하면서 이 신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주님의 수난과 십자가의 길에 대한 묵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사에 참례하고 기도하며, 착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좋지만 핵심적인 질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에 들어갔는지에 대한 여부라고 교황은 상기시켰다.

교황의 강론은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발췌한 제1독서(로마 5,12-21)에서 출발했다. 거기서 성 바오로 사도는 “무엇인가 이해시키도록” 노력하기 위해, 죄, 불신앙, 은총, 용서라는 대조 명제를 사용하고 있다. 바오로 사도는 설명하려는 것을 “설명하기에 무능하다고” 느낀다. 이 모든 것 뒤에, 구원의 역사가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설명하기 위한 충분한 표현이 부족하기에,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빠져들도록 우리를 내던진다”고 교황은 설명했다. 그래서 이 대조는, 이해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그리스도의 신비에 빠져들기 위한 여정에 필요한 발걸음에 불과하다. 논증을 통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리스도의 신비는 아주 “풍요롭고” 매우 “고귀하다.”  왜냐하면 논증은 어느 지점까지만 이르게 할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신에게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나에게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깨닫기 위해서는, 이 신비 속에 빠져들어가야 한다고 교황은 권고했다.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성 바오로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분입니다”(갈라 2,20). 비록 어렵겠지만, 교황은 누군가 의로운 사람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있더라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 같은 죄인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를 통해, 성 바오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비에 들어갈 수 있기를 모색한다. 쉽지 않은 일이고, “하나의 은총이다.” 시성된 성인들 뿐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 감춰진” 수많은 성인들도 이 사실을 깨닫는다. 성인들은 주님께 희망을 두고 있는 겸손한 사람들이고,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들어간 사람들이다. 사도 바오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두고 (이방인에게는) “어리석은 일”(1코린 1,23)이라며, 자랑할 것이 있다면 오직 “자신의 죄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 없다”(갈라 6,14)고 강조하고, 이 가르침은 회당에서 가말리엘 문하에서 교육받은 것도 아니요(사도 22,3 참조)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갈라 1,12 참조).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신비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또 다른 모순”은 “나 자신의 죄를 살피는 것이다”.

교황은 우리가 미사에 참례할 때, 말씀 안에 계시는 그분, 곧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것을 알지만, 신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고 강조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훨씬 더 큰 일이고,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자비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도록 자신을 놓아두는 것입니다. 거기엔 오로지 사랑의 포옹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를 위해 그분을 죽음에 이르게 했던 사랑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 고해성사하러 갈 때(물론 죄를 떨쳐버려야 하기에 ‘하느님 제 죄를 용서하소서’라고 말하지만), 고해사제에게 가서 죄를 고백하고, 그런 다음에는 우리는 편안하고 만족할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 그렇게만 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고해소로 간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러 가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에 들어가려고 가는 것이며, 사도 바오로가 말하는 거저 받은 용서, 그 용서의 포옹 안으로 들어가려고 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당신에게 예수님”이 누구인지에 관한 질문에 대해,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대답할 수 있고, 신경 전체를 외울 수 있으며, 교리 전체를 설명할 수는 있을 지라도, “나를 사랑하셨고” 또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의 중심을 말할 수 있는 시점에 도달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깨닫는 것은 공부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순수한 은총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황은 신심 실천에 도움이 되는 것을 제시했다. 곧 ‘십자가의 길’ (Via Crucis)이다. 십자가의 길은 우리에게 “용서와 평화의 포옹”을 주는 그 순간에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이다.

“십자가의 길을 바치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주님의 수난 순간들을 생각하면서, 집에서도 십자가의 길을 바치십시오. 위대한 성인들도 항상 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신비와의 만남을 통해 영성생활을 시작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성녀 데레사는 수녀들에게 그녀가 체험했던 높은 차원의 기도인 관상 기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수난에 대한 묵상으로 시작하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십자가 안에서 그리스도를 시작하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로써 그분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셨고’, ‘나를 위해 죽음 앞에 목숨을 바치셨음’을 마음을 다해 깨닫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교황은 제1독서에서 성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신비의 깊은 심연으로 인도하기를 원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나는 좋은 그리스도인이고, 주일미사에 참여하고, 자선활동도 하며, 기도도 바치고, 내 자녀들을 잘 교육시킵니다.’ 물론 이는 아주 잘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그대는 이 모든 것을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에 들어갔습니까?’ 그대가 조절할 수 없는 것은 (...) 참된 증인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던 인물이며, 그분을 만나기 위해 그분께 자신을 맡겼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에 들어갔던, 성 바오로에게 청합시다. 성 바오로 사도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은총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죄의 뿌리까지 뽑아주신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의로운 자가 되게 해주신 주님의 신비에 들어갈 은총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교황은 끝으로, “창조의 가장 위대한 신비와 모든 것의 아이콘인” 십자가에 매달리신 분을 바라보고, “역사의 중심이자 내 삶의 중심이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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